http://www.ansan.go.kr/yellowPage/mailing.jsp?menuId=01006027&id=1004&mode=S¤tPage=1&articleId=1163827
자선비
이찬(李燦) 선생은 한말(韓末)에서 1920년대초까지 생존했던 덕망 높았던 재산가, 유지로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20호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1066-133
시대 : 조선후기
규모 : 140×34.5×15cm

이찬(李燦) 선생은 한말(韓末)에서 1920년대 초까지 생존했던 이 고장의 덕망(德望) 높았던 재산가(財産家)·유지로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선생은 일찍이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나 그가 생존해 있을 당시만 해도 대부남동일원(一圓)의 토지는 거의 그의 소유라 할만큼 대지주 (大地主) 였으며, 대부분의 농토(農土)는 많은 소작인(小作人)들에 의해 경작(耕作)되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평소 마음이 소박하고 인정(人情)이 두터워 스스로 가난한 민중의 처지를 깊이 헤아려 일부의 땅은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빚과 소작료(小作料)를 탕감(蕩減)해 주는 등 범인(凡人)이면 생각할 수 없는 큰 덕량(德量)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 뒤 선생이 별세하자 은혜(恩惠)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 거향적(擧鄕的)으로 장례(葬禮)를 치르고 생전의 고마운 마음씨와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현 대부남4동에 위치한 선행의 묘소 앞에 자선비(慈善碑)를 건립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선생의 가세(家勢)와 후사(後嗣)가 영락(零落)되고, 비(碑)를 돌보는 이가 없어 자주 쓰러져 1980년 4월 5일 대부남동 산85-17번지 에 세워졌다가 대부도 시·도 2호선도로 건설로 2001년 6월 11일 현재의 위치에 이건(移建)되었다.

자선비의 석재(石材)는 화강암이며, 대석(臺石)은 시멘트조로 건립되었다. 그 규모는 높이 140cm, 폭 34.5cm, 두께 15cm이다.

메뉴관리담당자
문화예술과 문화재관리팀 / 031-481-3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