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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강선생묘 및 신도비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인조 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조판서까지 역임하였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15호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산17-2
시대 : 묘 - 현종8년(1667) 신도비 - 숙종35년(1709)
규모 : 봉분 - 209×620cm 신도비 - 270×111×48cm
약도보기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자준(子駿), 호는 무곡(無谷),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공조참의(工曹參議) 민헌(民獻)의 아들이다. 인조 2년(162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인조 4년 검열(檢閱)을 거쳐 봉교·정언·교리 등을 지냈고, 인조 20년(1642) 사은겸진주사 (謝恩兼陳湊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통정대부의 품계에 올라 승지·집의·대사헌·도승지·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효종 8년(1657)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예조판서로 빈전도감제조 (殯殿都監提調)가 되어 장례를 치루었다. 이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使)·이조판서를 역임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현종 5년(1664)민유중의 탄핵으로 사직한 후 향리인 안산으로 낙향하였다. 묘는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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