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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거겸장군 묘
조선 초기의 무신으로, 세종 24년(1442) 무과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육진을 수비하며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다. 성종 2년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밀산군(密山君)에 봉해졌다. 경상우도·충청도의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23호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산107
시대 : 묘 – 성종 12년(1481)
규모 : 봉분- 600×170cm, 묘갈 - 46×21×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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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거겸[태종 13년(1413) ~ 성종 12년(1481)] 장군은 조선 초기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공(仲恭), 아버지는 증호조판서 경빈(景斌)이다. 세종 14년(1432) 문음으로 별시위(別侍衛)에 속하였고, 내금위(內禁衛)로 옮겨 호군(護軍)으로 있다가 1442년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대호군으로 세자우익위(世子右翊衛)를 겸하였다. 그뒤 지훈련관사(知訓鍊觀事)를 거쳐 1443년에 북청도호부사(北靑都護府使)를 지냈고 1449년에는 경흥도호부사(慶興都護府事)가 되어 새로 설치된 육진(六鎭)을 수비하여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다. 문종, 단종 때에 대호군·경상도처치사(慶尙道處置使) 등을 역임하고 세조 1년(1455) 첨지중추원부사로 원종공신(原從功臣)2등에 책록되었다. 1457년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승진되었고 같은해 판강릉부사(判江陵府使)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어, 주민의 청에 따라 임기가 만료된 뒤에도 계속 유임되어 4년간 재임하였으며, 1460년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예종 1년(1469)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이 되었으며 성종 2년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밀산군(密山君)에 봉하여졌다. 그뒤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평간(平簡)이다.

묘는 화정동에 위치해 있고 좌측에 박거겸 장군 묘가 있고 우측에 부인 진주강씨의 묘가 있으며 두 묘 앞에 묘갈이 있는데 보통 묘갈처럼 정면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세로로 세워져 있어 매우 특이하다. 부인 묘 옆으로 근래에 새로 세운 묘갈이 하나 더 있으며 장명등과 망주석 한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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