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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혼 선생묘
통덕랑으로 학문과 덕행, 특히 예법에 명성이 높았으며 연산군때 사화를 피해 감자골로 입향, 독선당에서 자적자수(自適自修) 하였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10호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사동 83-8
시대 : 조선11대 중종 ∼ 18대 현종까지
규모 : 봉분 - 155×520cm외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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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최씨(楊州崔氏)의 중시조(中始祖) 독선당(獨善堂) 혼(渾 9世)이 연산군 5년(1498) 무오 사화(戊午士禍)를 피해 父인 자준(自濬), 祖父인 담(潭)를 모시고 현 안산시 사동 감자골로 입향(入鄕)한 이래 이곳에서 별세한 6대 13기(27명)의 무덤과 시조로부터 상계(6世가지) 7명의 제단이 보존되어 있는 안산시 소재 최대 규모의 묘역이다.

서기 1500년대 초 감자골로 입향(入鄕)한 양주최씨(楊州崔氏)는 7, 8, 9世(獨善堂:혼渾)의 후손 두 계파가 490여년 동안 28世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으며 매년 10월 1일 이곳 묘역에서 시향제(時享祭)를 지냄으로서 전통적 유교식집성촌의 법도를 지켜왔는바 1976년 이래 반월공단 신도시개발로 광대했던 묘역의 상당 지역이 당국에 의해 수용(收用), 삭실(削失)되었다.

양주 최씨(楊州崔氏)의 시조 억(億)은 고려때 태사(太師)로 천거되어 공민왕 2년(1352) 호부상서 (戶部尙書)를 역임한 문경공(文敬公)으로 양주군으로 봉작 되었으며, 2世 연(淵)은 판도판서 (判圖判書), 3世 숙(淑)은 병조전서(兵曹典書), 4世 경운(慶雲)은 공조전서(工曹典書), 5世 항 (沆)은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지냈고, 6世 정안(井安)은 우정언부사직(右正言副司直)을 역임했고, 정연(井涓)은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냈는바 이들 일곱분은 선영제단에 비(碑)를 세웠으며 안산 감자골로 입향하였으며 정걸(挺傑)은 절충장군(折衝將軍), 병자호란 때의 순절공신(殉節功臣)으로 사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중직되었고 충장(忠壯)의 시호를 제수받았다.

이들 7世부터 12世까지의 거의 모두가 이곳 묘역에 봉분이 유존(遺存)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비석, 상석, 망주석 등이 석물도 보전가치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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