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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걸장군묘
조선시대의 충절공신이며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을 때 단신으로 적진에 출격 적의머리 7급을 베어 어전에 바치어 인조가 포상하여 어주를 내렸다. 인조 14년에 전사하여 인조 15년에 가선대부 병조참판을 추증받았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8호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사동 산92-7
시대 : 조선조 인조14년 (1636)
규모 : 봉분 - 155×520cm 비석 - 198×53×24cm
약도보기

최정걸(崔挺傑) 장군은 양주 최씨 시조 억(億)의 12세손으로서 조선인조 15년(1637)에 가선대부 병조참판을 추증(追贈)받았으며 충장(忠壯)의 시호를 받은 충절공신(忠節功臣)이다.

최정걸 장군은 등무과 출신으로 절충장군 (折衝將軍) 까지 지낸 후 귀향(안산시 사동 감자골)하여 효양우애(孝養友愛)하고 있던 중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 (播遷) 하심을 알고, 장군은 50세의 나이로 남한산성행궁(南漢山城行宮)으로 달려가니 조정은 주화파(主和派)가 득세하여 바야흐로 국치를 당할 판국이었다.

장군은 적진으로 단신 출격하여 적의 머리 칠급(七級)을 베어 인조어전에 바치니 인조는 크게 감동하고 그 충용을 포상하여 어주(御酒)를 내렸다. 그러나 조정은 강대한 호세(胡勢)에 눌려 치욕적인 강화(講和)로 기우니 장군은 이튿날 다시 적의 대군 중으로 돌진하여 분전 끝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인조 14년 (1636) 12월 29일) 이 소식을 들은 인조는 장군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가선대부병조참판(嘉善大夫兵曹參判)을 추증하고 향리에 예관(禮官)을 보내어 후히 장사지내게 하고 정문(旌門)을 내리며 사패(賜牌), 봉록(俸錄)하였다.
장군의 묘소는 본오동 벌이 내려다 보이는 안산시 사동 산우물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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