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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선생묘 및 신도비
조선시대의 문신, 서예가로 성종 25년 병과로 급제 연산군 10년 우부승지였으나 연산군 12년 투옥되어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었다. 중종 16년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 와서 예조 참판까지 이르렀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3호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산16-3
시대 : 묘 - 중종31년 (1536), 신도비- 중종31년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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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서예가, 자는 언심(彦深), 호는 소재(少齋), 심재(深齋), 본관은 진주(晉州),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이행(利行)의 아들. 성종25년(1494)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별시(別試)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제학(副提學)을 거쳐 연산군 10년(1504) 우부승지(右副承旨) 로 왕에게 사냥을 삼갈 것을 말했다가 낙안(樂安)에 유배되고 연산군 12년(1506) 복세암 (福世庵)의 이건(移建)을 반대하여 투옥되었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석방되어 강원도 관찰사가 되고 중종 3년(1508)과 중종 16년(1521)에 각각 성절사(聖節使)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전주(全州) 경주부윤(慶州府尹)을 거쳐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이르렀다. 중종이 제작한 병풍의 글씨와 명신(名臣)들의 시문(詩文), 홍문관(弘文館)에서 올린 정명도(程明道)의 잠(箴)을 쓰니 당대의 명필이란 칭송을 들었다. 이밖에 글씨로 <정익혜공난종신도비명 (鄭翼惠公蘭宗神道碑銘)>이 있다. 묘는 현 안산시 양상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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