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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처윤 선생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인조17년 알성문과에 급제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첨지 중추 부사, 예조참의에 이르렀으며 이조참판을 추증받았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13호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112-2
시대 : 묘 - 현종4년(1663) 묘비 - 숙종23년(1697)
규모 : 봉분 - 120×5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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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지임(之任), 호는 안분재(安分齋), 본관은 남양(南陽), 관찰사 명원 (命元)의 아들, 1639년(인조 17년) 알성문과 (謁聖文科) 에 병과(丙科)로 급제, 1641년 검열 (檢閱)을 거쳐 1646년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과제(科題)에 문제가 있어 파방(罷榜) 되자 삭직 (削職) 당했다. 1648년 복적되어 정언(正言)·수찬(修撰)을 지내고, 1650년(효종1) 응교(應敎)로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어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이 해 지평 (持坪)으로 영의정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했다.

이에 교리(校理)가 되고 왕이 당쟁의 폐해를 지적하자 그 무해(無害)함을 진술하여 삭직(削職) 되었다가 백천 군수(白川郡守)로 기용되고, 1655년 보덕(輔德)에 승진, 사인 (舍人)을 거쳐 1659년 수찬(修撰)·겸보덕(兼輔德) 등을 지냈다. 이 해 효종이 죽자 빈전도감도청(殯殿都監道廳) 이 되고 이에 사간(司諫)을 지낸 후 이듬해 형조참의(刑曹參議)·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 1661년(현종 2) 호조 참의가 되고 황해도 관찰사를 거쳐 1663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예조 참의에 이르렀으며 이조 참판을 추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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