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는 언제나 어린이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안산시 어린이 시청

유석선생묘 및 신도비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인조 3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삼사의 요직을 두루거쳐 벼슬이 강원도 관찰사에 이르렀다. 후에 좌찬성이 추증되었으며 묘는 부곡동에 있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12호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산5-1
시대 : 묘 - 효종6년(1655) 신도비 - 숙종16년(1690)
규모 : 봉분 - 128×370cm 신도비 - 212×96×38cm
약도보기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덕보(德甫), 호는 개산(皆山),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사옹원정 (司饔院正) 시회(詩會)의 아들로서 조부 격(格)은 정언(正言)을 지냈고, 어머니는 안동권씨 (安東權氏)이다. 인조 3년(1625) 별시문과에 급제, 정자(正字)직에 있을 때 선조의 제7자 곧 인조의 삼촌인 인성군(仁城君) 공(珙)의 모역(謀逆) 사건이 일어나자 무고임을 알고, 한무제 (漢武帝)의 포속요(布粟謠)에 비유한 상소를 올려 그를 구출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한 대부분의 중신들이 도망가고 이듬해 삼전도 (三田渡)에서 항복하니, 당시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예조판서 김상헌 (金尙憲)을 탄핵하였다.

그는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거쳐 벼슬이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에 이르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묘는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다. 조경(趙絅)이 찬(撰)하고 허목(許穆)이 서(書)한 그의 신도비(神道碑)에는, 공은 인품이 강직하고 방정했으니, 그것은 타고난 천성 이었다. 그리고 특립독행(特立獨行)의 지조가 있었으며, 문장을 하는 것도 그 위인(爲人)과 같았다. 선배에 남곽(南郭) 박동열(朴東說) 같은 이가 있어 '공의 변려문은 소장공 (蘇長公:東坡) 의 당(堂)에 들어갈 만하다'고 칭찬하였다.
저서로 개산집(皆山集)이 전해지고 있다.

메뉴관리담당자
정보통신과 정보기획팀 / 031-481-2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