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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탄 대선생묘
안탄대 선생은 생존시 종 7품인 적순부위의 벼슬을 지냈으며 사실상 부원군의 위치에 있었음 에도 부귀영화를 사양하고 검소와 겸손으로 생애를 마쳤으며 사후에는 조정에서 우의정으로 추서되었다.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83호
소재지 :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615-1
시대 : 조선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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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이조 제11대 중종의 빙장(聘丈 :장인)이 되며 제14대 선조의 진외증조부(陳外曾祖父)인 안탄대 선생의 묘이다. 안탄대 선생의 딸인 창빈안씨(昌賓安氏)는 중종2년(1507)에 중종의 후궁으로 들어가 2남 1녀를 출산하였으니 장남은 영양군이고 차남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 되며 딸은 정신옹주이다. 따라서 선조는 덕흥대원군의 아들이며 선조 이후 역대 16대 왕은 창빈안씨의 혈손이 된 안탄대 선생의 외손으로 계승되게 되었다. 안탄대 선생은 생존시 종7품인 적순부위(조선때 무관의 종7품 벼슬)를 지냈으며 부귀영화를 사양하고 검소와 겸손으로써 생애를 마쳤으며 사후에는 조정에서 우의정으로 추서되었다. 안탄대 선생은 집안이 몹시 가난한데도 자기분수에 맞지않는 일에는 결코 눈을 돌리는 일이 없었으며, 성품이 매우 순하고 부드러워서 다른 사람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안공은 딸이 빈이 된 다음부터는 몸가짐을 더욱 조심하고 근신하였다. (嬪:정일품 내명부(內命婦)의 일컬음) 그저 잘못되었다고만 사과할 뿐 한번도 울분하여 성미를 돋구는 일이 없었다. 창빈이 아들을 낳은 후에는 문밖 출입을 삼가하였는데 그것은 처신에 더욱 조심함이요, 왕자의 외가됨이 송구스러 워서였다. 그의 묘비문에 따르면 효종왕 때 왕명으로 비문을 지으면서도 안산안씨 만을 밝히고 그의 선조와 가계를 밝히지 않았으니 그의 자나 호를 알길이 없고 출생일과 사망일조차도 전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겸손과 검소로 일생을 마친 안탄대 선생의 묘역에는 안탄대 부부묘와 풍해군 이잠의 묘가 있으며 묘소 부설물로서 비석2, 장군석4, 망주석4, 상석3, 향로석3개가 있으며 비석은 금석문 (金石文 : 비(碑), 종(鐘) 따위의 새긴문자)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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