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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김홍도 사진 김홍도는일반적으로 풍속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신선그림, 행사그림, 초상화 등 모든분야에서 탁월한 기량으로 보였다.
    본관은 김해이며, 호는 단원이다. 예로부터 안산은 문화적 토양이 매우 비옥했던 고장이었다. 18세기 영,정조시대에 이곳은 학문과 예술의 향훈으로 가득차 있었다.
    점성촌(현재의 일동)에는 실학의 거목인 성호 이익이, 북쪽의 부곡동에는 시서화의 삼절로 추앙을 받던 표암 강세황이 계셨다.

단원김홍도

단원 김홍도(檀圓 金弘道)의 출생 및 사망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7∼8세부터 20여세까지 표암 강세항 선생 으로부터 그림수업을 받았으며 표암 강세황(豹庵 姜世晃)선생은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에서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안산시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축되며, 또한 유년작으로 해변의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안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든 안산에서 그림수업을 시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김홍도는 일반적으로 풍속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신선그림, 행사 그림, 초상화 등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산수화는 그 의 예술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김홍도의 산수화 배경은 어려서부터 그를 아끼고 지도했던 강세황의 영향 이 컸으며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남종화풍(南宗畵風)의 운치 있는 산수화와 우리 나라 산천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풍속화에서 보여준 기량을 바탕으로 산수풍속(山 水風俗)에서 우리의 서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그가44세 되던 해에 정조의 명을 받고 복헌 김웅황과 함께 금강산에 있는 4개군의 풍경을 그린 것을 계기로 하여 그의 독자적인 산수화를 확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때 김홍도가 실제 경관을 사생(寫生)한 것이 금강산 사군첩(四郡帖)인데 여 기에서는 우리나라 화강암 돌산과 소나무가 있는 토산을 표현하는 적절한 묘사법 을 터득하여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는 모습을 경쾌하게 묘사한 수지법(樹枝法)이 완성되었다. 김홍도의 이러한 산수화는 그가 51세 되던 해에 연풍현감을 물러나면서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이후 더욱 완숙한 경지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에 그는 여백을 적절히 남기면서 대상을 압축하는 밀도있는 구도법과 형상 을 집약해서 표현해 내는 묘사력 그리고 운치있는 운염법 등으로 김홍도의 산수화는 진경산수와 남종문인화가 하나로 만나는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이룩한 속화(俗畵)양식은 같은 시대의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후배들이 그대로 추종하는 바가 되어 그의 아들인 긍원 김양기, 임담 백은배, 혜산 유숙, 시산 유운홍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정승 벼슬자리 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삼공 불환 도(三公 不煥圖)」 와 개성 만월대에서 벌어진 잔치를 그린 「기노 세련계도(耆老 世聯圖)」말을 타고 가다가 꾀꼬리 소리에 멈추었다는 마상청앵도(馬上廳鶯圖)」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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