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1월의 문화인물 이찬/이찬선생은 한말에서 1920년대초까지생존했던 덕망높았던 재산가. 유지로서 본관은 경주이다.(한말~1920)

이찬(李燦) 선생은 한말(韓末)에서 1920년대 초까지 생존했던 이 고장의 덕망(德望) 높았던 재산가(財産家)·유지로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선생은 일찍이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나 그가 생존해 있을 당시만해도 남동(南洞) 일원(一圓)의 토지는 거의 그의 소유라 할만큼
대지주(大地主) 였으며, 대부분의 농토(農土)는 많은 소작인(小作人)들에 의해 경작(耕作) 되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평소 마음이 소박하고 인정(人情) 이 두터워 스스로 가난한 민중의 처지를 깊이 헤아려 일부의 땅은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빚과 소작료(小作料)를 탕감(蕩減)해 주는 등 범인(凡人)이면 생각할 수 없는 큰 덕량(德量)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 뒤 선생이 별세하자 은혜(恩惠)를 입은 마을사람들이 거향적(擧鄕的)으로 장례(葬禮)를 치르고 생전의 고마운 마음씨와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선생의 묘소 앞에 자선비(慈善碑)를 건립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선생의 가세(家勢)와 후사(後嗣)가 영락(零落)되고, 비(碑)를 돌보는 이가 없어 자주 쓰러져 1980년 4월 5일 대부남동 산 85-17번지에 세워졌다가 2001년 6월 17일 대부도 시·도 2호선 도로건설로 대남초등학교 앞으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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